간호사 제니할매의 이야기 '간병인(돌보미)은 슈퍼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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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은 슈퍼맨이 아니다
환자를 돌보다 먼저 쓰러지는 가족들
“제니, 제가 조금만 더 참으면 되겠죠?”
그 말을 한 사람은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환자의 아내였습니다.
제가 방문한 집에는 뇌졸중 후 거동이 불편해진 80대 남편과 그를 돌보는 아내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워커 없이는 걷기 어려웠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누군가 옆에 있어야 했고, 약도 챙겨줘야 했습니다.
밤에는 소변을 보기 위해 몇 번씩 일어났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여보, 천천히.”
한 손으로 남편의 허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워커를 잡았습니다.
낮에는 밥을 하고,
약을 챙기고,
빨래를 하고,
병원에 전화하고,
밤에는 남편이 넘어질까 귀를 세우고 잤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눈만 감고 있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저는 남편보다 아내 얼굴을 더 오래 바라봤습니다.
얼굴이 너무 수척했습니다.
“어머니, 요즘 식사는 잘하세요?”
“그럼요.”
“잠은요?”
“잘 자죠.”
그런데 싱크대 위에는 아침에 타놓은 듯한 커피가 그대로 식어 있었습니다.
식탁에는 먹다 남긴 빵 한 조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괜찮으세요?”
아내는 웃었습니다.
“나는 괜찮아요. 이 양반이나 잘 봐주세요.”
방문간호를 오래 하다 보면 압니다.
가족들이 말하는
“나는 괜찮아요.”
그 말이 정말 괜찮다는 뜻이 아닐 때가 많다는 것을.
환자 약은 챙기면서 자기 약은 잊었습니다
남편 약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아침.
저녁.
약통에 한 치의 오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아내의 혈압약 병을 보았습니다.
약이 꽤 남아 있었습니다.
“이건 어머니 약 아니에요?”
“맞아요.”
“잘 드시고 계세요?”
대답이 없었습니다.
“며칠 안 드셨죠?”
아내가 머쓱하게 웃었습니다.
“정신이 있어야 먹지.”
남편의 약 먹는 시간은 분 단위로 기억하면서,
자기 약은 잊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병원 예약은 달력에 크게 적어놓으면서,
자기 진료 예약은 몇 달째 미루고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병원 안 가셨어요?”
“내가 병원 가면 이 사람은 누가 봐요?”
그 한마디에 더 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전화가 왔습니다
며칠 뒤였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건 사람은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딸이었습니다.
“제니 간호사님, 엄마가 응급실에 갔어요.”
순간 저는 남편을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아버님이 아니라 어머님이요?”
“네.”
아침에 남편을 화장실에 데려다주다가 갑자기 어지러워 주저앉았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 환자였던 남편은 집에 있었고,
그를 돌보던 아내가 병원에 가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장면이었습니다.
돌봄을 받던 사람은 남았고, 돌보던 사람이 먼저 쓰러졌습니다.
슈퍼맨도 교대는 합니다
가족 간병은 끝나는 시간이 없습니다.
병원 간호사에게는 근무 종료 시간이 있습니다.
다음 근무자가 옵니다.
인계를 하고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오늘 간병 끝.”
이라는 시간이 없습니다.
특히 치매나 뇌졸중처럼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면 밤에도 마음을 놓기 어렵습니다.
화장실에 가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약을 잘못 먹지는 않을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는 않을까.
숨소리가 이상하지는 않을까.
몸은 침대에 누워 있어도 마음은 계속 당직입니다.
그러니 가족이 아무리 사랑해도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인데 어떻게 남한테 맡겨요”
제가 가족에게 외부 도움을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말이 있습니다.
“남한테 어떻게 맡겨요.”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평생 함께 산 남편이고,
나를 키워준 부모이고,
내가 낳은 자식입니다.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마음 편할 리 없습니다.
어떤 분은 케어기버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립니다.
“내가 있는데 왜 남이 우리 남편을 돌봐요?”
또 어떤 자녀는 요양시설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부터 젓습니다.
“엄마를 버리는 것 같아서 못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쉽게
“시설에 보내세요.”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족마다 형편도 다르고,
환자의 상태도 다르고,
경제적인 상황도 다르고,
집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함께 살펴봅니다.
지금 이 방법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아내는 퇴원해 집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딸이 와 있었습니다.
케어기버의 도움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뭘 사람까지 불러.”
딸이 바로 받아쳤습니다.
“엄마가 할 수 있어서 응급실 갔어?”
“그건 내가 그날 좀 피곤해서….”
“엄마는 맨날 좀 피곤하대.”
두 사람의 말싸움을 듣고 있는데 침대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웃었습니다.
말이 불편한 분이라 평소에는 말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습니다.
“당신도… 좀 쉬어.”
방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남편의 이불만 한번 당겨주었습니다.
시설 이야기가 나오면 가족은 죄인이 됩니다
방문간호를 하다 보면 결국 이런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집에서 더 이상 안전하게 돌보기 어려운 때입니다.
치매가 심해져 밤마다 밖으로 나가려 하기도 하고,
혼자서는 환자를 들어 올릴 수 없게 되기도 하고,
간병하는 배우자 역시 늙고 병들기도 합니다.
그때 가족들은 시설이나 전문 돌봄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자신을 죄인처럼 생각합니다.
“내가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엄마가 싫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불효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 질문 앞에서 정답을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집에서 모시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한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두 가지를 섞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모시느냐보다,
그 돌봄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감당할 수 있는 모습인가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환자만 보는 간호사는 반쪽만 보는 것입니다
젊은 간호사 시절에는 환자를 먼저 봤습니다.
혈압이 얼마인지,
열이 있는지,
상처가 어떤지,
약은 잘 먹는지.
지금은 집에 들어가면 조금 더 넓게 봅니다.
환자 옆에서 밤새 잠을 못 잔 사람이 누구인지.
냉장고를 채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약통을 정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화장실에서 환자를 들어 올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사람 얼굴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도 봅니다.
환자 한 사람 뒤에는 때로 보이지 않는 또 한 명의 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람에게는 환자복도 없고,
진단명도 없고,
병원 차트도 없습니다.
이름 대신 그냥
‘보호자’
라고 적혀 있을 뿐입니다.
다시 그 집을 나서던 날
방문을 마치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케어기버가 막 들어왔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괜찮다니까 자꾸 사람을 보내.”
그러면서도 케어기버에게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과 약 먹는 시간을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
“이 양반 물은 미지근한 거 좋아해요.”
“네.”
“그리고 점심 먹고 이 약 잊으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워커는 꼭 오른쪽에 놓고요.”
한참을 설명하던 아내가 갑자기 말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저를 쳐다봤습니다.
“제니.”
“네?”
“나 잠깐 자도 되겠지?”
그 말을 듣는데 마음 한구석이 찡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아내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뒤 침실 문이 닫혔습니다.
거실에서는 케어기버가 남편에게 물을 건넸습니다.
남편은 닫힌 방문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많이 피곤했나 봐….”
그날 처음으로,
남편을 돌보던 아내가 낮잠을 잤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잘 있었고,
약도 제시간에 먹었고,
세상도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만큼은,
누군가의 아내도,
누군가의 간병인도 아닌
그냥 한 사람이 편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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