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백세인생,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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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인생 — 여든 살 딸이 백두 살 엄마를 돌봅니다
“제니야, 나 정말 이제 한계인 것 같아.”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습니다.
늘 씩씩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웬만큼 힘들어도 “괜찮아” 하고 웃어넘기던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첫마디부터 힘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78세.
그리고 그녀가 거의 20년 가까이 돌보고 있는 어머니는 올해 102세였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머니부터 걱정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집을 드나들며 걱정했던 사람은 오히려 딸이었습니다.
102세 어머니보다 78세 딸의 몸이 먼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두 살 엄마와 일흔여덟 살 딸
어머니는 놀라울 만큼 정신이 맑았습니다.
치매도 없었습니다.
다만 백 년을 넘게 살아온 몸이 예전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혼자 걷기 어려웠고, 씻고 옷을 갈아입는 일에도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식사 때면 딸이 앞치마를 둘러드렸습니다.
“엄마, 입 벌려봐.”
상추에 된장을 조금 올리고 음식을 한입 크기로 만들어 어머니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젓가락질이 힘든 날에는 손으로 쉽게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따로 준비했습니다.
어머니는 천천히 씹었습니다.
그 옆에서 딸은 허리를 한 손으로 짚고 서 있었습니다.
“허리 또 아파?”
제가 물으면 늘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괜찮아.”
그 ‘괜찮아’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허리디스크가 다시 심해져 의사는 수술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딸은 계속 미뤘습니다.
“내가 수술하면 엄마는 누가 봐?”
그 한마디였습니다.
“엄마를 누가 모셔?”
자매는 원래 셋이었습니다.
한 명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남은 막내동생도 이미 68세였습니다.
어느 날 두 자매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언니도 이제 수술해야지.”
“그러니까 내가 병원 가면 엄마를 누가 모시냐고.”
“나는 못해. 나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그럼 어떡하라는 거야?”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큰딸도 늙었습니다.
막내딸도 늙었습니다.
둘 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쉽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여전히 살아 계셨습니다.
백두 살의 엄마였습니다.
두 딸이 답 없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였습니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습니다.
〈백세인생〉.
백 살이 되면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담긴 노래가 방 안에 흘러나왔습니다.
잠시 뒤 막내딸이 피식 웃었습니다.
“언니.”
“왜?”
“우리 엄마 저 노래보다 더 오래 살았잖아.”
큰딸도 웃었습니다.
막내가 한마디 더 했습니다.
“아무래도 엄마 앞으로 20년은 더 살 것 같아.”
방 안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저도 웃었습니다.
그런데 웃고 나니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먹먹했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의 다른 얼굴
예전에는 부모가 여든, 아흔까지 살아 계시면 장수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백 살을 넘는 분도 드물지만은 않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방문간호 현장에서는 장수의 조금 다른 모습도 보게 됩니다.
부모가 늙는 동안 자식도 함께 늙습니다.
70대 딸이 100세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고,
허리가 아픈 아들이 90대 아버지를 부축합니다.
본인도 혈압약과 당뇨약을 먹는 사람이 더 연로한 부모의 약을 챙깁니다.
언젠가부터 제가 방문하는 집에서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집.
그 집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엄마, 딸도 이제 좀 아파.”
그날 저는 어머니 옆에 앉았습니다.
“어머니.”
“응?”
“따님 허리가 많이 아파요.”
할머니가 저를 빤히 바라봤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라고 하는데 못 가고 있네요.”
할머니의 표정이 잠깐 달라졌습니다.
옆에 서 있던 딸이 얼른 말했습니다.
“엄마, 신경 쓰지 마. 나는 괜찮아.”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괜찮다’는 말 좀 그만하세요.”
딸도 웃었습니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허리에 손을 얹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에게 잠시라도 돌봄을 나눌 방법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집과 비슷한 작은 돌봄 시설도 알아보고, 단기간 도움을 받을 방법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딸은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를 다른 데 보내면 내가 나쁜 딸 같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쉽게 할 수 없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어머니를 돌본 사람에게
“이제 그만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 20년이 자신의 인생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눈뜨면 엄마 밥을 챙기는 것.
약 먹을 시간을 보는 것.
목욕시키는 것.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
그것이 어느새 하루였고 한 달이었고 20년이 되었습니다.
돌봄은 때로 사랑이지만,
너무 오래 이어지면 삶의 습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놓기가 더 어렵습니다.
엄마도 늙고, 딸도 늙었다
며칠 뒤 다시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있었고 딸은 쌈을 하나씩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엄마, 이거 먹어.”
“된장 많이 넣지 마.”
“엄마는 백두 살인데도 짜게 먹는 건 알아.”
“싱거우면 맛없어.”
두 사람이 티격태격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다가 웃었습니다.
102세 어머니도 여전히 엄마였고,
78세 딸도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딸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딸이 접시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잠깐 멈춰 허리를 짚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허리 아프냐?”
딸이 얼른 몸을 폈습니다.
“아니야.”
어머니가 한마디 했습니다.
“너도 늙었구나.”
그 말에 딸이 웃었습니다.
“엄마, 나 일흔여덟이야.”
어머니는 잠시 딸을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냐?”
저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엄마에게 딸은 아무리 늙어도 딸인가 봅니다.
카세트에서는 또 그 노래가 흘렀다
잠시 후 어머니가 카세트 버튼을 눌렀습니다.
익숙한 〈백세인생〉이 다시 흘러나왔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박자를 맞췄습니다.
딸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소리 사이로 딸이 또 한번 허리를 짚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날 그 집을 나오면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백두 살까지 살아 계신 어머니.
그 어머니를 20년 가까이 돌본 일흔여덟 살 딸.
누가 누구보다 더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가 누구를 놓아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시간은 어머니에게만 흐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여든에서 백 살이 되는 동안,
딸도 쉰여덟에서 일흔여덟이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도 집 안에서는 노래가 들렸습니다.
백세를 노래하는 어머니와,
싱크대 앞에서 천천히 허리를 펴는 늙은 딸.
그날 제 눈에는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노인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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