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마음이 아픈 이들, 그들에게 관심과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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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픈 이들, 그들에게 관심과 위로를
어린 시절, 나는 동화보다 아버지의 환청과 환시 이야기를 더 가까이에서 들었다.
아버지에게는 분명히 들리고 보이지만, 내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세상이 있었다. 어린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넋두리를 가만히 듣는 일이 때로는 우리 부녀가 나누는 유일한 대화였다.
아버지도 괴로우셨겠지만, 어린 딸 역시 혼란스럽고 외로웠다.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지금의 마음이 그때의 내 슬픔까지 지워주는 것은 아니다.
정신병원 버스에서 배운 세상의 시선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 입사했다.
대중교통이 잘 닿지 않는 곳이라 병원에서는 환자 이동에 쓰던 작은 버스로 직원들의 출퇴근을 도왔다. 창문에는 보호망이 있었고, 차체에는 작은 글씨로 병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출퇴근하는 버스였다.
그런데 신호를 기다리며 멈출 때면 옆 버스 승객들의 눈길이 쏠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서로 얼굴을 보며 킥킥 웃기도 했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반가운 인사인 줄 알고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웃음이 더 커졌다. 나를 향한 모욕적인 말도 들려왔다.
그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병원 이름 하나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간호사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은 웃음을 거두었을까. 그렇다면 그 버스에 타고 있던 환자에게는 그래도 괜찮았다는 뜻일까.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그날의 창밖이 기억난다.
병원 주변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는 덜어낼 수 없는 아픔이었다.
코발트색 집에서 만나는 사람들
요즘 나는 LA 부근의 한 돌봄시설을 자주 방문한다.
코발트색의 이층 목조 건물. 그곳에서는 수십 명이 함께 생활한다. 나이도 인종도 다양하다. 대부분 스스로 움직이고 씻으며, 식사 시간이면 모이고 시설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방문할 때면 늘 대문이 열려 있고,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보인다. 영화 속 닫힌 정신병동을 떠올렸던 사람이라면 조금 의외일 것이다.
한여름에 두꺼운 옷을 여러 겹 입은 사람도 있고, 머리에 핀을 열 개 넘게 꽂은 사람도 있다. 그 차림을 보고 누군가 손가락질하거나 웃지는 않는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안전을 위해 큰 텔레비전에는 보호망이 씌워져 있고, 직원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생활을 살핀다. 휴게실 벽 달력에는 생일과 의사 방문 일정이 적혀 있다.
누군가에게는 진료를 기다리는 날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축하받을 생일이 있다. 그곳에서도 각자의 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조용한 얼굴에도 사연이 있다
처음에는 그들이 걱정도 욕심도 내려놓은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밖에서 바라본 내 생각일 뿐이다. 말수가 적다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고, 조용히 앉아 있다고 마음까지 평온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끔 누군가의 눈길이 허공에 오래 머무르면 나는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그 눈빛만으로 그 사람의 삶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신질환이라는 이름 뒤에도 성격과 취향, 기억과 관계가 있다.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며,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혈압을 재고 필요한 간호를 하면서도, 병보다 사람을 먼저 보려 한다. 대답이 늦어도 조금 기다리고, 말이 이어지면 서둘러 끊지 않으려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제는 간호사로서 필요한 도움을 살피면서, 그 곁에 잠시 머무를 수 있다.
관심과 위로는 작은 인사에서
살다 보면 우리도 상실을 겪고, 불안에 잠을 설치며,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만난다. 그 경험이 모든 정신질환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해줄 수는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말로 사람 사이에 선을 긋기 전에, 그 사람이 오늘 어떻게 지내는지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관심과 위로가 치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치료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외로움을 조금 덜 느끼도록 곁을 내어줄 수는 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 작은 인사부터 시작하고 싶다.
오래전 버스 안에서 나는 손을 흔들고도 조롱을 받았다. 이제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는 웃으며 건넨 인사가 웃음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자신을 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눈길일 테니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오늘은 그 말 옆에 한마디를 더 놓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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