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나, 집에서 죽고 싶어'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나, 집에서 죽고 싶어
호스피스를 선택한 어느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나, 집에서 죽고 싶어.”
Cheng 할머니는 아주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숨이 차서 한 문장을 끝까지 말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코에는 산소줄이 걸려 있었고, 산소발생기에서는 낮은 기계음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차갑고 낯선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아. 그냥 내 집에 있고 싶어.”
그날 저는 알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도 마지막까지 선택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평생 장사하며 자식들을 키운 여자
Cheng 할머니는 평생 LA 다운타운의 Jobber 시장에서 의류 도매상을 하셨습니다.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상대하며 악착같이 일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녀들을 공부시켰습니다.
아이들은 잘 자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산호세의 유명 IT 회사에서 간부로 일할 만큼 자리를 잡았습니다.
할머니의 노년은 비교적 평온했습니다.
차이나타운에 살던 할머니는 몸이 괜찮은 날이면 근처 시장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미국 마트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중국 채소와 과일, 고기와 딤섬, 말린 생선이며 약재가 빼곡한 가게들.
할머니에게 그 시장은 단순히 장을 보는 곳이 아니었을 겁니다.
고향의 냄새였고, 젊은 날의 기억이었고,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연결된 작은 통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기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습니다.
검사를 받고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항암치료도 받았습니다.
견디고 또 견뎠지만 암은 결국 말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산소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 힘들어졌고, 이번 달에만 벌써 두 번이나 응급실을 다녀왔습니다.
의사는 다시 입원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병원에 있어야 안전해.”
산호세에 사는 자녀들은 걱정이 컸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비행기를 타고 LA로 내려왔습니다.
“엄마, 병원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치료받을 수 있잖아.”
할머니도 알고 있었습니다.
병원이 더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나는 이제 병을 고치는 것보다 내 집에 있고 싶어.”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 침대에서 자고 싶고, 내 창문으로 밖을 보고 싶어.”
자녀들은 결국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호스피스(Hospice)를 선택했습니다.
하루 만에 집이 작은 병원이 되었다
호스피스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간호사가 왔고, 사회복지사가 왔습니다. 필요에 따라 목욕과 개인위생을 도와주는 호스피스 보조인력과 영적 돌봄 담당자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료장비가 도착했습니다.
병원 침대.
침대 옆 이동식 테이블.
산소 장비.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흡인기와 여러 물품들.
평생 가족이 살던 집 한쪽이 하루 만에 작은 병실처럼 변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집이 병원이 된 것일까.
아니면 병원이 할머니의 집으로 찾아온 것일까.
생각해 보니 후자에 더 가까웠습니다.
호스피스는 할머니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대신, 돌봄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가져왔으니까요.
호스피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호스피스를 선택한다고 해서 모든 돌봄을 중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목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병을 없애기 위한 치료보다 통증과 숨참, 불안과 불편을 덜어주고 남아 있는 시간을 가능한 편안하게 보내도록 돕는 쪽으로 중심이 옮겨갑니다.
환자뿐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함께 도움을 받습니다.
Cheng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아직 정신이 맑고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을 때,
“나는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고 싶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시 시장에 갈 수 있을까
어느 날 할머니가 창밖을 한참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생각하세요?”
할머니가 웃으셨습니다.
“시장 한번 가보고 싶네.”
예전에 다니던 차이나타운 시장이었습니다.
채소를 뒤적여 보고, 딤섬 가게 앞에 서서 냄새도 맡고, 상인들과 중국말로 몇 마디 흥정하던 그곳.
이제 그 몇 블록이 할머니에게는 너무 먼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몸 조금 좋아지면 가셔요.”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우리 둘 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셨습니다.
산소줄 너머로 아주 작은 미소가 보였습니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자기 삶의 주인이고 싶다
간호사로 오래 일하면서 저는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도 보았고, 집에서 가족의 손을 잡고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어느 쪽이 모든 사람에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질병의 상태도 다르고, 가족의 형편도 다르고, 환자가 원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Cheng 할머니를 보며 한 가지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장소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지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가능하다면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말할 기회만큼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Cheng 할머니에게 그곳은 화려한 병원도, 유명한 의료진이 있는 병실도 아니었습니다.
평생을 살아온 작은 집이었습니다.
익숙한 천장.
오래된 소파.
창밖으로 들어오는 LA의 오후 햇살.
그리고 가끔씩 떠오르는 차이나타운 시장의 시끌벅적한 소리.
그것이면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집을 나오려는데 할머니가 저를 불렀습니다.
“Jenny.”
제가 돌아보았습니다.
할머니가 산소줄을 만지며 웃었습니다.
“오늘은 병원 안 가도 되지?”
저도 웃으며 손을 잡아드렸습니다.
그 손은 많이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그 사람답게 살아갈 자리를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Cheng 할머니가 원했던 것은 어쩌면 죽을 장소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 집, 내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
그곳에 있고 싶었던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