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딸들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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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의 고민 — 늙은 부모를 지켜주는 작은 디바이스들
감시카메라부터 워커, 재활 자전거까지… 노인을 위한 기계보다 중요한 것
“따르릉—.”
하와이에 사는 Helen 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니 간호사님, 우리 아빠한테 좀 가주세요.”
LA에 혼자 사는 친정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Helen 씨는 아버지 거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아버지가 잘 계시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볼 때마다 속이 터진답니다.
“워커 쓰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또 그냥 나가세요. 지팡이도 안 짚고요.”
“아버지가 따님 말은 안 들으세요?”
“전혀요. 간호사님 말은 들으시니까 가서 좀 혼내주세요.”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와이에 사는 딸이 LA 아버지의 걸음걸이까지 보고 있는 세상.
이제 카메라는 도둑만 잡는 물건이 아닙니다. 늙은 부모를 걱정하는 자식들에게는 멀리 떨어진 눈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또 다르겠지요.
‘내가 내 집에서 내 발로 걷겠다는데 왜 저 멀리 하와이에서 잔소리야.’
아마 그러실 겁니다.
워커가 있다고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날 계단을 올라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최 할머니의 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한 달 휴가를 받아 어머니를 돌보러 온 분입니다.
“아직 안 가셨어요?”
인사를 건넸더니 얼굴부터 굳어졌습니다.
“큰일 날 뻔했어요.”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Long Beach에 놀러 갔다고 했습니다. 바닷바람도 쐬고, 천천히 산책도 하고, 수족관도 구경했습니다.
최 할머니는 평소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달린 워커를 사용합니다.
오래 걷다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딸 마음이 안쓰러웠겠지요.
“엄마, 앉아. 내가 밀어줄게.”
어머니를 워커 좌석에 앉히고 딸이 마주 보며 워커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경사진 길의 작은 턱에 바퀴가 걸렸습니다.
순간 워커가 흔들렸고 어머니는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즐거웠던 나들이는 응급실행으로 끝났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머리를 몇 바늘 꿰매야 했습니다.
딸은 계속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내가 괜히 밀었어요. 엄마 편하게 해드리려고 그런 건데….”
그 말을 듣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노인을 위한 보조기구라고 해서 저절로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하는 사람의 몸 상태와 기구의 용도에 맞게 써야 합니다.
특히 일반적인 좌석형 워커(rollator)는 이동 중 사람을 태워 밀기 위한 휠체어와는 목적이 다를 수 있어, 제품 설명과 의료진의 지침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해서 한 일이 사고가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엄마가 다시 한번 앉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마지막 방문은 시니어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사는 Judy 씨였습니다.
Judy 씨는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뇌졸중 이후 벌써 3년째 거의 침대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말도 하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G-tube와 feeding pump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혼자 손을 뻗을 수도, 발을 움직여 어디론가 갈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방문하면 Judy 씨는 가끔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그 모습을 매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딸은 제게 자주 물었습니다.
“제니 간호사님, 우리 엄마가 언젠가 혼자 앉을 수 있을까요?”
조금 있다가는 또 물었습니다.
“혹시 다시 걸을 수도 있을까요?”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리치료사가 Judy 씨의 다리를 살펴보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다리에 조금씩 힘이 생기고 있으니 안전하게 지지한 상태에서 고정식 자전거 운동을 시도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의료진과 치료사의 판단 아래 이동 보조 장비를 이용해 몸을 안전하게 지지하고, 자전거에 앉혀 천천히 페달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발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발끝이 움직이고 무릎이 따라왔습니다.
페달이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엄마! 엄마가 돌렸어!”
딸의 목소리가 먼저 흥분했습니다.
Judy 씨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자전거 위에 앉아 천천히 발을 움직이는 동안, 늘 허공만 바라보던 Judy 씨의 얼굴에 아주 희미한 미소 같은 것이 번졌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아파트 꼭대기 층 작은 방 안에서 자전거는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Judy 씨는 어디론가 멀리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쩌면 젊었던 시절의 거리로.
어쩌면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던 어느 봄날로.
어쩌면 다시 한번 자기 발로 세상을 걸어보는 꿈속으로.
기계보다 먼저 보이는 것
요즘 노인들의 집에는 참 많은 디바이스가 들어옵니다.
카메라가 있고, 지팡이와 워커가 있고, 휠체어가 있고, 병원 침대와 산소 장비, feeding pump와 각종 재활기구도 있습니다.
잘 사용하면 노인의 안전과 독립성을 지키는 든든한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만난 세 딸을 생각하면 그 기계들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아버지가 워커를 쓰는지 걱정하는 딸.
한국에서 한 달 휴가를 받아 어머니와 바닷바람 한번 쐬러 갔다가 응급실에서 가슴을 쓸어내린 딸.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발이 자전거 페달을 한 바퀴 돌리는 것을 보며 아이처럼 기뻐하던 딸.
딸들은 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로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엄마, 아빠. 조금만 더 안전하게, 조금만 더 오래 내 곁에 있어줘.”
그날 Judy 씨의 자전거는 제자리에서 계속 돌고 있었습니다.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않는 자전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그 자전거가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는 자전거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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