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평생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할머니'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평생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할머니
어느 강한 여인의 마지막 선택을 바라본 방문간호사의 기억
“제니, 나는 남한테 신세 지는 게 제일 싫어.”
할머니가 제게 여러 번 하셨던 말입니다.
그때는 그저 자존심 강한 분의 흔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 말이 할머니에게는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라, 평생 자신을 지탱해온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을요.
할머니는 혼자 힘으로 꽤 성공한 분이었습니다.
머리가 명석했고 판단이 빨랐습니다. 사업 감각도 좋아 자신의 분야에서 남부럽지 않은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을 싫어했고, 도움받는 것보다 도움주는 쪽이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아들과 딸.
두 아이 모두 입양한 자녀였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자녀들을 함께 본 사람이라면 굳이 ‘입양’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반듯하게 자랐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몸이지만, 사람을 키우는 것은 결국 마음인지도 모른다고.
할머니는 두 자녀를 이야기할 때면 늘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내가 애들은 잘 키웠지?”
그 말만큼은 평소의 당당한 목소리 속에 엄마의 웃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강한 사람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어느 날 할머니에게 뇌졸중이 찾아왔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혼자 일어나기도 어려웠고, 식사부터 옷을 갈아입는 일, 몸을 씻는 일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을 지휘하고 결정하며 살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물 한 모금에도 다른 사람의 손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들어서면 이것저것 물어보셨는데 점점 말수가 줄었습니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그냥 그래.”
“식사는 하셨어요?”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짧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뇌졸중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환자를 보다 보면 말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눈빛입니다.
할머니의 눈에서는 조금씩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화도 아니었고 슬픔만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자신답게 살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
어쩌면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들한테 짐이 되기 싫어.”
어느 날 할머니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애들 힘들게 하기 싫어.”
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싶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자식들이 얼마나 어머님을 생각하는데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창밖만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그 침묵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죽고 싶다”고 직접 말해야만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평소와 달리 말을 잃고, 자신을 짐이라고 여기고, 삶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 역시 마음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몸을 살피는 데 더 익숙한 간호사였습니다.
혈압을 재고, 약을 확인하고, 피부를 살피고, 식사를 확인했습니다.
정작 할머니 마음속에서 무너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컸는지는 다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침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강했던 사람이 얼마나 무너졌기에 혼자 그곳까지 갔을까.
그리고 두 자녀가 떠올랐습니다.
엄마의 선택 앞에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밤을 자신들에게 질문했을까요.
‘내가 조금 더 자주 갔더라면.’
‘그날 전화를 한 번 더 했더라면.’
‘엄마가 힘들다는 말을 왜 알아듣지 못했을까.’
하지만 사람의 마지막 선택을 남겨진 누군가의 잘못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마음속에는 우리가 밖에서 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과 절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오랜 세월 간호사로 일하면서 저는 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린 사람.
전쟁을 견딘 사람.
맨손으로 이민 와서 사업을 일군 사람.
아무리 아파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들이 어느 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더 깊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평생 ‘나는 내 힘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버텨왔기에, 그것을 잃는 일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환자가 이렇게 말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이제 쓸모가 없어.”
“애들한테 짐만 되지.”
“이렇게 살아서 뭐 해.”
짧은 말이지만 때로는 혈압이나 혈당 수치보다 먼저 살펴야 할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이면 가끔 할머니가 생각난다
오늘 LA에는 오랜만에 비가 내립니다.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똑똑했고,
당당했고,
두 자녀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키웠고,
평생 남에게 지기 싫어했던 여인.
사람들은 할머니의 마지막 하루만 알면 그분의 삶 전체를 오해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마지막 하루의 모습이 아닙니다.
두 자녀 이야기를 하며 슬쩍 입꼬리를 올리던 사람.
“내가 애들은 잘 키웠지?”
하고 자랑하던 엄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할머니의 죽음이 아니라,
그분이 살아낸 긴 세월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 미처 오래 듣지 못했던 한마디도 함께 기억합니다.
“애들한테 짐이 되기 싫어.”
비는 계속 내립니다.
커피는 어느새 식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도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그날 내가 혈압계를 조금 일찍 내려놓고,
할머니 침대 곁에 조금 더 오래 앉아 있었다면,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 질문의 답은 평생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의 집 초인종을 누를 때면 저는 얼굴부터 바라봅니다.
말보다 먼저,
그 사람의 눈을 봅니다.
※ 이 글은 방문간호 현장에서 경험한 기억을 바탕으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 상황과 인물을 각색했습니다. 죽음이나 자살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거나 주변 사람에게 그런 징후가 보인다면 혼자 감당하지 말고 즉시 가까운 사람과 의료진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988 Suicide & Crisis Lifeline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