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80세에 이혼을 결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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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에 이혼을 결심한 이유
작은 시니어 아파트에서 터져버린 50년 묵은 부부싸움
“은자 씨, 혈압이 너무 높은데요.”
혈압계 숫자를 보고 저는 다시 한번 커프를 확인했습니다.
수축기 혈압 200mmHg 이상.
80세 은자 씨는 전날 주치의 진료실에 다녀온 참이었습니다.
“집에서는 가끔 혈압이 너무 높게 나와요.”
그런데 병원에서 재면 멀쩡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의사는 며칠 동안 집에서 혈압을 확인해 보자며 방문간호를 의뢰했습니다.
가슴 통증은 없는지, 숨이 차거나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은 없는지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특별한 증상은 없었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게 하고 의자에 편하게 앉힌 뒤 천천히 숨을 고르게 했습니다. 잠시 후 다시 잰 혈압은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저는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는 괜찮은 혈압이 왜 집에만 오면 이렇게 올라갈까.
답은 사흘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복도 끝에서 들려온 고함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 저쪽에서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럼 당신이 해 먹어!”
시니어 아파트에서는 가끔 부부싸움을 목격합니다.
젊은 사람만 싸우는 게 아닙니다.
여든이 넘어도 싸우고, 아흔이 되어도 삐집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사흘 동안 말도 안 하고 냉전 중이라고 제게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목소리가 익숙했습니다.
은자 씨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남편은 식탁 앞에 앉아 있었고 은자 씨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혈압을 쟀습니다.
또 200이 넘었습니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은자 씨가 한참 입을 다물고 있더니 말했습니다.
“반찬이 맛이 없대요.”
처음에는 저도 웃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은자 씨는 웃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집에 오면 내 남편, 나가면 남의 남편
남편은 한국에서 꽤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공부도 잘해 그 시절 귀했던 미국 유학까지 왔고, 미국에서 회계사가 되었습니다. 은자 씨와 결혼해 남매도 두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할 것 없는 남편이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아내의 인생은 달랐습니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남편은 돈 쓰는 데도 거침이 없었고, 여자 문제로 은자 씨 속을 숱하게 태웠다고 했습니다.
은자 씨가 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쩌다 집에 오면 내 남편이고, 나가면 남의 남편이었지.”
그 한마디를 하는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싸우는 대신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남편에게 쏟을 마음까지 자식에게 주며 그렇게 한 해, 두 해를 넘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든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입맛만은 늙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재산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일반 아파트 임대료도 부담스러워질 무렵, 10여 년 전에 신청해 두었던 시니어 아파트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작아도 좋았습니다.
월세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습니다.
문제는 이사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방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박학다식하고 책도 많고 물건도 많은 남편이 그 방을 거의 차지했습니다.
침대, 책, 옷가지….
은자 씨 몫은 거실 한쪽이었습니다.
작은 침대 하나, 소파 하나, 그리고 끝까지 버리지 못한 도자기 하나.
큰집에서 작은 집으로 옮기며 얼마나 많은 것을 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은 사람과 함께 쌓인 세월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주방이었습니다.
남편은 대단한 미식가였습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좋아해 주인공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즐겨 보고, 유튜브로 맛집을 찾아보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귀엽지요.
문제는 그 입맛의 기준이 고스란히 아내에게 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이 어제보다 짜네.”
“생선은 조금 더 바삭하게 구워야지.”
“이건 사 온 거지?”
은자 씨가 몰래 사 온 반찬은 기가 막히게 알아냈습니다.
하루 세끼.
일주일이면 스물한 끼.
한 달이면 대략 아흔 끼.
그 작은 부엌에서 여든 살 아내가 남편의 입맛을 맞추며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반찬 한 접시가 50년을 터뜨렸다
그날도 별것 아닌 반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한 숟갈 먹더니 또 한마디 했습니다.
“이걸 음식이라고 했어?”
그 순간 은자 씨 안에서 무언가 툭 끊어졌습니다.
젊은 날의 여자 문제도 참았습니다.
돈을 잃었을 때도 참았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참았고, 남들 보기 부끄러워 참았고, 늙어서는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느냐며 또 참았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합니다.
태풍에도 버티던 나무가 작은 바람 한 번에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은자 씨가 남편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잘 알면 당신이 해 먹어!”
남편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해서는 안 될 말 하나를 던졌습니다.
“먼저 간 내 애인은 입맛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맞았는데….”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고, 할아버지. 오늘은 제가 혈압약이 아니라 할아버지 입을 먼저 막아드려야겠습니다.
은자 씨의 혈압이 왜 집에서만 200을 넘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나, 이혼할 거예요.”
남편이 방으로 들어간 뒤 은자 씨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물 한 잔을 건넸습니다.
그녀가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니 씨.”
“네.”
“나 이혼할 거예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너무 평온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소리를 지르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여든인데 무슨 이혼이냐고 사람들이 웃겠지?”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은자 씨가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습니다.
“그 몇 년이라도 밥하기 싫으면 안 하고 살고 싶어요.”
그 말 앞에서는 제가 간호사라는 사실도 잠시 잊었습니다.
그녀가 버리고 싶었던 마지막 한 가지
방문간호를 마치고 나오는데 거실 한쪽 작은 침대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던 여자의 자리가 겨우 그만큼이었습니다.
침대 하나.
소파 하나.
도자기 하나.
큰집을 떠나며 가구도 버리고, 옷도 버리고, 살림도 버렸습니다.
그런데 은자 씨가 마지막으로 버리고 싶었던 것은 물건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내니까 참아야 한다’는 오래된 마음.
80세의 이혼이 옳은지 그른지 저는 모릅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고, 화가 가라앉은 뒤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날 저는 알았습니다.
사람에게는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내 자리 하나쯤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며칠 뒤 다시 방문했을 때 은자 씨의 혈압은 많이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방 안에 있었고, 식탁 위에는 음식 대신 식빵과 바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슬쩍 물었습니다.
“오늘 점심은요?”
은자 씨가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각자 알아서.”
그리고 잠시 뒤, 소녀처럼 웃었습니다.
“이혼은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요.”
저도 웃었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당장 필요했던 것은 이혼서류가 아니라, 평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내 마음대로 사는 하루’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시니어 아파트 복도를 나오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든 살에도 사람은 새로운 인생을 꿈꿉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새로운 인생은 거창한 여행도, 큰돈도 아닙니다.
오늘 저녁 한 끼쯤 남편 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제니할매의 간호노트
혈압이 180/120mmHg 이상으로 매우 높게 측정되면 잠시 안정을 취한 뒤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가슴 통증, 호흡곤란, 심한 두통, 시야 변화, 마비·말하기 어려움 등 새로운 이상 증상이 함께 있다면 즉시 응급의료 평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분노도 일시적으로 혈압을 크게 올릴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높은 혈압이 측정된다면 단순히 “성격 때문”이라고 넘기지 말고 의료진과 상의해 원인을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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