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응급실 VIP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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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VIP는 없다
먼저 온 사람이 아니라, 가장 위급한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곳
“간호사님, 저희 아버지부터 좀 봐주세요.”
늦은 밤 응급실 대기실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 열이 오른 아이를 안은 엄마, 배를 움켜쥔 채 몸을 웅크린 남자까지. 보호자는 접수대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
“아버지가 이 병원에 오래 다니셨어요. 담당 의사도 잘 아시고요.”
간호사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불편하신 건 알지만, 지금 더 위급한 환자가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때 응급실 문이 거칠게 열렸습니다. 구급대원들이 한 남자를 실은 침대를 밀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환자의 얼굴은 잿빛이었고, 가슴 위에서는 구급대원의 두 손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대기실에서 들리던 불평이 순간 멎었습니다.
응급실에서 순서를 정하는 것은 접수번호도, 보험의 종류도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의 기준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지금 누구의 생명이 가장 위태로운가.
두 시간 기다렸다는 말 뒤에 가려진 것
“저희는 벌써 두 시간째예요.”
응급실에서 일할 때도, 방문간호를 하면서도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두 시간은 길고 억울한 시간입니다. 언제 불릴지 모른 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작은 신음조차 서러워집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응급실 문 안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심장이 멈춘 사람에게는 1분이 급하고, 뇌졸중이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지나가는 시간이 뇌세포와 연결됩니다. 심한 출혈이나 호흡곤란이 있는 사람에게도 기다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응급실은 선착순이 아니라 위급한 순서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괜찮아요”라고 말하던 할아버지
한번은 대기실 한쪽에 아주 조용히 앉아 계신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옆에서는 한 환자가 허리가 아프다며 큰 소리로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예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말했습니다.
“나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부터 봐요.”
그런데 간호사가 할아버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곧바로 휠체어를 가져왔습니다. 입술에 핏기가 없었고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혈압과 산소포화도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 지금 바로 들어가셔야 해요.”
조금 전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위험한 사람은 때때로 소리를 지를 힘조차 없습니다. 숨이 차서 문장을 끝내지 못하고, 혈압이 떨어져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합니다. 갑자기 멍해지거나 평소와 달리 말이 어눌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료진은 목소리의 크기보다 얼굴빛과 호흡, 맥박, 혈압, 산소포화도와 의식 상태를 먼저 살핍니다.
“내일까지 기다려보려고 했어요”
방문간호를 하며 더 가슴 철렁했던 순간은 응급실에 간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가지 않으려던 사람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한 할머니는 의자에 기대앉아 가슴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지만 자꾸만 손사래를 쳤습니다.
“어제부터 좀 답답했는데 괜찮아지겠지 했어요. 응급실에 가면 밤새 기다리잖아요.”
말을 하다가 숨을 고르는 모습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저는 할머니 곁에 앉아 눈을 맞추었습니다.
“오늘은 기다려도 병원에서 기다리셔야 해요. 집에서 혼자 기다리시면 안 돼요.”
구급차가 도착하자 할머니는 현관 앞 화분을 걱정했습니다.
“제니 씨, 저 꽃에 물을 못 줬는데….”
저는 담요를 여며드리며 대답했습니다.
“꽃은 제가 볼게요. 할머니는 할머니부터 살펴야지요.”
문이 닫히고 구급차 불빛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저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응급실에서 돈보다 먼저 통하는 것
어떤 보호자는 말합니다.
“보험이 아주 좋은데요.”
“병원에 아는 의사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이 병원에 기부도 했어요.”
그러나 응급실의 진료 우선순위는 그런 말로 정해져서는 안 됩니다. 앞에 있는 환자가 더 위급하다면 그 환자가 먼저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 원칙은 차갑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가운 원칙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명을 지킵니다.
돈과 지위가 앞서는 순간, 심정지 환자가 감기 환자 뒤로 밀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밤
그날 아버지를 먼저 봐달라던 보호자는 한참 뒤 조용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구급침대가 지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으니 다행이다.”
보호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아버지의 외투 단추를 하나 더 채워드렸습니다.
응급실에서 오래 기다리는 일은 여전히 힘듭니다. 통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불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누군가보다 생명이 덜 위태롭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는 왕도 없고, 백화점처럼 대접받는 VIP도 없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우면 남는 것은 직함도 재산도 아닌 한 사람의 맥박과 숨결뿐입니다.
그 밤, 응급실에서 가장 특별한 대우를 받은 사람은 가장 높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위태롭게 숨 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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