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잊혀져가는 모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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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모국어 — 그런데 제임스는 달랐다
LA 한인타운 외곽의 오래된 시니어 아파트.
복도 끝 어느 집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렸습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뜻밖에도 건장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안쪽 방에 계세요.”
저는 순간 제임스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습니다.
한국말이었습니다.
그것도 억양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한국말이었습니다.
“어머, 제임스. 한국말을 어떻게 이렇게 잘해요?”
그가 웃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를 키워주셨어요.”
그 한마디를 듣고 나니 제임스의 한국말이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한국에서 왔고 아들은 미국에서 자랐다
제임스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한국에서 미군으로 근무하던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낯선 나라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결혼생활은 생각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아내와 미국인 남편 사이에는 조금씩 벽이 생겼다고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마음도 자꾸 어긋났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고, 어린 제임스는 어머니와 남았습니다.
그때 딸과 어린 손자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임스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였습니다.
두 분은 영어보다 한국말이 훨씬 편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린 손자와 하루 종일 한국말로 살았습니다.
“제임스야, 밥 먹어라.”
“추운데 옷 좀 입어.”
“숙제했니?”
잘못하면 한국말로 야단쳤고, 아프면 한국말로 걱정했고, 잘한 날에는 한국말로 칭찬했습니다.
아마 제임스가 처음 배운 한국말 가운데는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보다
“밥 먹었니?”
“배고프지?”
같은 말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제임스에게 한국어가 들어왔습니다.
공부해서 배운 외국어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의 밥 냄새와 함께 들어왔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어린 시절과 함께 몸에 밴 말이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통역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방문간호를 오래 하다 보면 세월의 변화를 환자의 집 안에서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국인 어르신을 방문했는데 보호자인 아들이나 딸에게 전화를 걸면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머니 혈압이 오늘 조금 높았습니다.”
한국말로 말씀드렸는데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영어로 대답합니다.
“Could you explain that in English?”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한 자녀에게는 영어가 가장 편한 언어일 테니까요.
부모는 한국말이 편하고 자식은 영어가 편합니다.
평소에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나이가 들고 아프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아픈 곳을 설명해야 하고, 오래전 병력을 이야기해야 하고, 때로는 두렵고 외로운 마음까지 자식에게 전하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 문득 깨닫게 됩니다.
말이라는 것이 단순히 의사소통만을 위한 도구는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도 합니다.
앞으로 십 년, 이십 년이 더 지나면 미국의 한인 시니어 가정에서 한국말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때의 방문간호사는 어르신과 자녀 사이에서 어떤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그런데 제임스는 달랐다
제임스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른에게 말하는 태도며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오래전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흔적이 보였습니다.
어머니 방에 들어갈 때도 먼저 문을 두드렸습니다.
“엄마, 간호사 선생님 오셨어.”
침대 옆 물컵이 비어 있는 것을 보더니 말없이 물부터 채웠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발을 살펴보는 동안에는 옆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주었습니다.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까지 문제가 생긴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임스는 특별한 일을 한다는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자기 일처럼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외할머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임스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우리 할머니 김치찌개 정말 잘했어요.”
저도 웃었습니다.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진짜 맛있었어요. 아무리 해봐도 그 맛이 안 나요.”
“비법을 안 가르쳐주셨나 보네.”
그러자 제임스가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맞아요. 할머니들은 맨날 ‘대충 넣어’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맞습니다.
한국 할머니들의 요리법에는 계량컵이 별로 없습니다.
간장도 적당히.
고춧가루도 적당히.
마늘도 이만큼.
그런데 그 ‘적당히’를 따라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습니다.
한참 웃던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가끔 그 김치찌개 냄새가 생각나요.”
그 말에서 웃음이 멈췄습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왜 제임스가 그토록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하는지.
그에게 한국어는 언어 하나를 더 할 줄 안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밥 먹어라.”
“차 조심해라.”
“늦게 다니지 마라.”
어린 시절 귀찮도록 들었을 그 말들 속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 간호사 선생님 가신대.”
방문을 마치고 가방을 챙겼습니다.
제임스가 어머니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엄마, 간호사 선생님 이제 가신대.”
침대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저를 바라보며 힘없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저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현관으로 나오면서 제임스에게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제임스, 한국말 잊어버리면 안 돼요.”
그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마 못 잊을 거예요.”
“왜요?”
잠시 생각하던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한국말 하면 할머니 목소리가 생각나거든요.”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조금 전 들었던 말들이 자꾸 귓가에 남았습니다.
김치찌개.
밥 먹어라.
차 조심해라.
별것 아닌 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떠나고 나면 이상하게 그런 말들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그날 저는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어떤 언어는 책으로 배우지만,
어떤 언어는 사람에게서 배운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배운 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말 속에 사랑했던 사람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에게 한국어는 모국어라기보다 어쩌면 ‘할머니의 언어’에 가까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단어 몇 개쯤 잊어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누군가 따뜻한 김치찌개를 앞에 놓고
“제임스야, 밥 먹어라.”
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만큼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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