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화장실이 가장 위험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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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가장 위험한 방
방문간호사가 어르신 집에 가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 곳
“제니 간호사, 우리 집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 어디예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대부분은 계단을 떠올립니다.
어떤 분은 부엌이라고 하고, 어떤 분은 현관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조금 의외의 대답을 합니다.
“화장실이요.”
그러면 거의 비슷한 표정을 짓습니다.
“화장실이 왜?”
그런데 방문간호를 오래 다니다 보면 압니다.
집에서 가장 익숙해서 방심하기 쉬운 곳, 그러면서도 한 번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라는 것을요.
“살짝 미끄러졌어.”
몇 해 전, 혼자 사시는 82세 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시는 걸음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한쪽 발을 살짝 끌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다리 아프세요?”
“아니야.”
“그런데 왜 그렇게 걸으세요?”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습니다.
“어젯밤에 화장실에서 살짝 미끄러졌어.”
저는 그 ‘살짝’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르신들이 “살짝”, “조금”, “별거 아니야”라고 말할 때는 한 번 더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디 한번 볼까요?”
바지를 조금 걷어보니 허벅지 옆으로 시퍼런 멍이 퍼져 있었습니다.
손목도 부어 있었습니다.
“이건 병원에서 한번 확인하셔야겠는데요.”
그러자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괜찮아.”
그날 검사에서 손목 골절이 확인됐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어르신이
“괜찮아요.”
라고 말하면 오히려 한 번 더 묻게 됩니다.
“정말 괜찮으세요?”
화장실에서는 몸이 참 바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화장실에서는 몸을 많이 움직입니다.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고,
바지를 올리고 내리고,
몸을 돌리고,
샤워하다 발을 옮기고,
수건을 잡으려고 팔을 뻗습니다.
게다가 바닥에는 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밤중이라면 상황은 더 달라집니다.
잠에서 덜 깬 채 급하게 일어나 어두운 복도를 지나고,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작은 물기나 문턱 하나가 그날따라 발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았던 몸도 나이가 들면 예전처럼 빨리 반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 집에서 화장실을 볼 때 괜히 바닥을 한번 쳐다봅니다.
할머니가 붙잡던 것은 수건걸이였습니다
그 할머니 집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변기 옆에 손잡이가 없었습니다.
“일어날 때 뭐 잡으세요?”
할머니가 벽을 가리켰습니다.
“저거.”
수건걸이였습니다.
“아이고, 할머니. 저건 수건 잡으라고 있는 거지 할머니 잡으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할머니가 웃었습니다.
“여태 안 떨어졌는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여태는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낙상이 늘 ‘여태 괜찮았다’ 다음에 온다는 겁니다.
수건걸이나 휴지걸이는 사람 몸무게를 지탱하도록 설치된 안전손잡이가 아닙니다.
저는 보호자에게 이야기해 변기 옆과 샤워 공간에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손잡이를 제대로 설치하도록 권했습니다.
며칠 뒤 다시 방문했더니 할머니가 새 손잡이를 잡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좋네.”
그러더니 꼭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진작 할걸.”
발밑에는 푹신한 슬리퍼가 있었습니다
화장실 앞에는 오래 신은 슬리퍼 한 켤레가 놓여 있었습니다.
밑창은 거의 닳아 반들반들했습니다.
“이것도 바꾸셔야겠어요.”
“왜? 이게 제일 편한데.”
어르신들이 참 자주 하는 말씀입니다.
편한 것과 안전한 것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바닥에 물기가 있을 때는 쉽게 미끄러지는 신발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욕실 밖에는 발에 잘 맞고 잘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두고, 욕실 안 역시 물이 고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말을 길게 하지 않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너무 많이 설명하면 다음 방문 때 제가 더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새 신발 하나 장만하세요.”
“또 돈 쓰라고?”
“병원비보다 싸요.”
그제야 할머니가 웃었습니다.
사고가 난 뒤에야 보이는 것들
낙상을 겪은 집을 다시 방문하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옵니다.
왜 여기에 손잡이가 없었을까.
왜 밤에 화장실 가는 길이 이렇게 어두웠을까.
왜 바닥에 작은 매트가 여러 장 놓여 있었을까.
왜 자주 쓰는 물건을 저렇게 멀리 뒀을까.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집 안 풍경이 다르게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방문간호를 가면 환자의 혈압과 약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길도 봅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몇 걸음인지,
밤에 불을 쉽게 켤 수 있는지,
발에 걸릴 물건이 없는지,
변기에서 일어날 때 손을 짚을 곳이 있는지.
건강은 몸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는 공간에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만난 할머니
몇 주 뒤 다시 그 집에 갔습니다.
손목에는 아직 보호대를 하고 있었지만 걸음은 전보다 한결 편해 보였습니다.
화장실에는 새 안전손잡이가 생겼고, 바닥도 말끔했습니다.
밤에 켜두는 작은 등도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이제 화장실 갈 때 괜찮으세요?”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응. 근데 제니.”
“왜요?”
“이렇게 쉬운 걸 왜 사고 나기 전에는 생각을 못 했을까?”
저도 잠시 화장실 문 쪽을 바라봤습니다.
아마 우리 모두가 비슷할 겁니다.
매일 사용하는 곳은 너무 익숙해서 위험을 보지 못합니다.
늘 걸어 다니던 길,
늘 잡던 물건,
늘 신던 슬리퍼.
어제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이유로 오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집도 조금씩 나와 함께 늙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필요 없었던 손잡이를 달고,
조명을 하나 더 켜고,
조금 귀찮더라도 바닥의 물기를 닦아내는 것.
그런 작은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계속 혼자 걸을 수 있는 시간을 지켜줄지도 모릅니다.
그날 집을 나오는데 할머니가 뒤에서 말했습니다.
“제니, 나 이제 화장실 천천히 다녀.”
저는 문을 닫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아무도 안 쫓아가니까 천천히 다녀오세요.”
현관 밖으로 나오면서 저도 모르게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에는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일이 참 많은데,
왜 우리는 화장실까지 뛰어다니며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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