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세상에서 가장 깊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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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세상에서 가장 깊은 슬픔
미국 방문간호사가 안젤라의 빨간 손톱에서 본 작은 위로
오늘은 안젤라를 만나러 가는 날입니다.
현관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한 청년과 눈이 마주칩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액자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남자. 짧게 자른 머리와 가지런한 치아, 장난기가 남아 있는 눈빛이 금방이라도 액자 밖으로 걸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는 사고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안젤라의 아들입니다.
“Your son?”
제가 처음 물었을 때 안젤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말을 꺼내려던 입술이 몇 번 움직였지만 소리는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굳은 손가락으로 액자를 가리킨 뒤, 주먹을 가슴에 꼭 갖다 댔습니다.
그 짧은 몸짓 하나에 미처 말이 되지 못한 문장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내 아들이에요.’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어쩌면,
‘아직도 너무 보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도 닫히지 않는 방문
사람들은 큰 슬픔을 겪은 이에게 흔히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아마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간호사 생활 동안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을 만나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슬픔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다시 아침을 맞으며 그 슬픔을 데리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울 뿐이었습니다.
안젤라는 아들의 사진을 먼지 한 점 없이 닦아두었습니다. 액자 옆에는 작은 조화와 오래된 생일카드가 놓여 있었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사진의 위치는 같았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달력이 넘어가고, 안젤라의 머리카락에 흰빛이 늘어도 액자 속 아들은 언제나 같은 나이로 웃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만 늙어가고 아들은 늙지 않는 집.
그 집의 시간은 두 갈래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무너진 뒤 찾아온 병
아들을 잃은 뒤 안젤라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식사를 거르는 날이 많아졌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오랫동안 집 안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중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졸중이 찾아왔습니다.
깊은 슬픔이 뇌졸중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뇌졸중에는 고혈압, 당뇨, 혈관질환을 비롯한 여러 위험요인이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들을 잃은 뒤 안젤라의 마음과 일상이 함께 무너졌다는 것은 곁에 있던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뇌졸중 이후 안젤라는 한쪽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워졌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 머릿속에 있는데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몇 마디를 힘겹게 이어가다 보면 입가에 침이 고였습니다. 안젤라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꾸 손등으로 입을 닦았습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제가 휴지를 건네면 안젤라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간호사가 잴 수 없는 통증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혈압은 숫자로 기록할 수 있고 상처는 자로 잴 수 있지만,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그리움은 어떤 간호 기록지에도 다 적을 수 없었습니다.
딸의 전화를 받았던 날
안젤라 앞에 앉아 있으면 오래전 딸에게서 걸려 온 전화가 떠오릅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제 딸이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멀어졌습니다. 간호사로서 알고 있던 의학 지식도 그때만큼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왜 하필 내 딸일까.’
저는 주저앉아 기도했습니다.
“주님, 차라리 제가 아프게 해주십시오. 제 남은 생명을 가져가셔도 좋으니 우리 딸만 살려주십시오.”
부모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자식의 고통을 대신 가져올 수만 있다면 망설이지 않을 사람.
감사하게도 딸은 치료를 잘 마치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지금은 사위와 함께 타국에서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고, 보고 싶을 때 사진을 보내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을 안젤라의 슬픔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에게는 다시 딸을 안을 기회가 있었지만, 안젤라는 아무리 기다려도 액자 속 아들을 다시 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는 날
그날 간호를 마친 뒤 가방에서 작은 매니큐어 병을 꺼냈습니다.
안젤라가 좋아하는 선명한 빨간색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쁘게 해볼까요?”
안젤라의 눈빛이 금세 밝아졌습니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조심스럽게 수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저는 손톱 가장자리에 묻지 않도록 천천히 색을 칠했습니다. 한 손가락이 끝날 때마다 안젤라는 고개를 기울여 손톱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 손톱까지 다 칠하고 손으로 부채질해 주자, 안젤라가 두 손을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뒤 그녀의 시선은 다시 아들의 사진으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그 짧은 순간만큼은 슬픔보다 빨간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 특별한 간호를 한 것이 아닙니다.
슬픔을 없애주지도 못했고, 잃어버린 아들을 돌려주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색을 기억하고, 굳은 손을 제 손 위에 올려놓았을 뿐입니다.
말보다 곁이 필요한 순간
돌아갈 시간이 되어 현관 앞에 섰을 때 안젤라가 천천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빨갛게 칠한 손톱이 오후 햇살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저도 손을 흔들어 답한 뒤 거실의 액자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사진 속 아들은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힘내세요.”
“이제는 잊으세요.”
그런 말은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슬픔을 서둘러 끝내라는 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든 그 아이를 기억해 주고, 오늘 하루를 혼자 견디지 않도록 잠시 곁에 앉아주는 사람일지 모릅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안젤라가 빨간 손톱으로 액자 속 아들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가슴을 가만히 눌렀습니다.
아들은 세상에 없지만 어머니의 마음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그날 집을 나서는 제 뒤로 현관문이 천천히 닫혔습니다.
문틈 사이로 마지막까지 보였던 것은 안젤라의 눈물이 아니라, 햇살 속에서 작게 반짝이던 열 개의 빨간 손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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