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죽음을 준비한 사람과 준비하지 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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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한 사람과 준비하지 못한 사람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간호사로 오래 살다 보니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같은 나이에도, 비슷한 병을 앓아도 마지막 풍경은 놀라울 만큼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의 손을 잡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누군가의 병실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형제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연명치료를 할 것인지, 장례는 어떻게 할 것인지, 통장은 어디 있는지, 집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정작 떠나가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남은 사람들이 대신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마지막 풍경까지 같지는 않다는 것을.
“간호사님, 나는 준비 다 했어요”
그날 방문한 김 할머니는 여든아홉이었습니다.
말기 심부전으로 입원과 퇴원을 여러 번 반복하셨고, 이제는 코에 산소줄을 끼고 생활하셨습니다.
숨은 조금 가빴지만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했습니다.
혈압을 재고 있는데 침대 옆 탁자 위에 낡은 서류철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건 뭐예요?”
할머니가 씩 웃으셨습니다.
“내가 죽고 나서 애들 싸우지 말라고 만들어 놨어.”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류철을 펼쳐보니 정말 꼼꼼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의료 결정에 관한 내용부터 장례에 대한 생각, 보험과 통장 목록, 중요한 물건을 둔 장소까지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뒤에는 봉투 몇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손주들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이건요?”
“손주들한테 쓴 편지야.”
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 편지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할머니와 손주들만의 마지막 이야기일 테니까요.
잠시 후 할머니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간호사님, 나는 죽는 건 별로 안 무서워.”
그리고 조금 뜸을 들이셨습니다.
“내가 가고 나서 애들이 힘들까 봐 그게 걱정이지.”
그날 저는 서류철 하나가 그렇게 따뜻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사람들은 죽음 이야기를 꺼내면 손사래부터 칩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아직 멀었어.”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우리도 가능하면 오래 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생각조차 하기 싫으니까요.
하지만 간호사로 살아오면서 저는 ‘나중’이 오지 않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아침까지 멀쩡히 식사하던 사람이 오후에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하고, 다음 달 여행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의식을 잃기도 합니다.
그때 가족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 찾아옵니다.
“환자분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셨습니까?”
미국에서는 자신의 의료와 돌봄에 대한 뜻을 건강할 때 가족과 미리 이야기하고 필요하면 문서로 남겨두는 과정을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이라고 합니다.
서류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끼리 한번 이야기를 해보는 것입니다.
아무도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병실
몇 달 전, 여든두 살 박 할아버지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왔습니다.
의료진이 가족에게 물었습니다.
“상태가 악화될 경우 심폐소생술에 대해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첫째가 바로 대답했습니다.
“무조건 살려주세요.”
그러자 둘째가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했어.”
셋째가 끼어들었습니다.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어? 나는 처음 듣는데?”
목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형이 아버지 마음을 어떻게 알아?”
“내가 제일 많이 모셨잖아.”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침대에는 아버지가 누워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방에서 가장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의사는 기다리고,
간호사는 설명하고,
자식들은 울다가 다투었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모두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무엇을 원했는지를.
저는 병실 한쪽에 서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싸움은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가족 모두가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한 번의 대화가 오늘 이 병실에서 터져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달라지는 것들
오랫동안 환자들의 마지막 시간을 지켜보며 이상하게 자주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조금 덜 싸울 걸.”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더 말할 걸.”
“건강할 때 여행 한번 더 갈 걸.”
“미안하다고 먼저 말할 걸.”
그런데 아직까지 이런 후회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 야근을 조금 더 할 걸.”
“돈을 조금 더 벌어놓을 걸.”
사람은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평생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의 순서를 다시 매기는 것 같습니다.
돈이 뒤로 가고,
자존심도 뒤로 가고,
누가 옳았는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집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보고 싶은 얼굴.
잡고 싶은 손.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한 말.
“고마웠어.”
“미안했어.”
“사랑해.”
간호사 생활이 길어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젊은 간호사 시절의 저는 혈압을 정확히 재고, 상처를 잘 치료하고, 약을 틀리지 않게 설명하는 사람이 좋은 간호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이별 곁에 서보고 나니 간호에는 또 다른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없이 서 있는 아들의 손을 아버지 손 위에 살며시 올려드리는 일.
서먹했던 가족에게 잠시 둘만 있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일.
평생 미안하다는 말을 못 했던 사람이 마지막에 그 한마디를 꺼낼 때 조용히 병실 문을 닫아주는 일.
그런 것도 간호였습니다.
어쩌면 제가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배운 간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할머니의 마지막 서류철
방문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김 할머니가 저를 불렀습니다.
“간호사님.”
“네, 할머니.”
“내가 죽고 나면 저 서류철을 애들이 잘 찾겠지?”
“침대 바로 옆에 있는데요. 못 찾으면 제가 혼내줄게요.”
할머니가 소리 내어 웃으셨습니다.
“그래, 간호사님이 혼내줘.”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습니다.
죽음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그 집에는 죽음의 냄새보다 잘 살아낸 사람의 평온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차에 올라타기 전 다시 한번 그 집 창문을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침대 옆의 낡은 서류철이 떠올랐습니다.
그 안에는 통장도 있었고 보험 이야기도 있었고 장례에 관한 부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김 할머니가 정말 정리해 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서로에게 미룰 결정 하나를 덜어주고,
손주들에게 하지 못할 말 몇 마디를 미리 남겨놓고,
자신이 떠난 뒤에도 가족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작은 길 하나를 만들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을 준비를 하는 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김 할머니의 산소줄 옆에는
손주들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 봉투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아직 할머니는 그 집에 계셨지만,
언젠가 자신이 없을 날을 위해
이미 사랑을 남겨두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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