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자식은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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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멀리 있어도 울타리였습니다
“제니 간호사, 전화기 좀 봐줘요. 우리 아들이 전화했는지도 몰라.”
미국에서 방문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어르신의 집을 드나들었지만,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모습은 어느 집에서나 비슷했습니다.
그날 찾아간 곳은 LA 외곽의 작은 시니어 아파트였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오래된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꼭 쥐고 계셨습니다. 혈압을 재기 위해 팔을 내밀어 달라고 해도 전화기부터 제게 건네셨습니다.
“어젯밤부터 아무 소리도 안 나. 고장 났나 봐.”
전화기는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부재중 전화도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리기가 왠지 미안해 저는 벨 소리를 크게 올리고 충전기를 다시 꽂아드렸습니다.
“이제 전화 오면 온 동네가 다 듣겠어요.”
제가 웃으며 말하자 할머니도 따라 웃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전화기 화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들은 뉴욕에, 어머니는 캘리포니아에
할머니의 외아들은 뉴욕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책장 위에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던 날 찍은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검은 졸업 가운을 입은 아들보다 그 옆의 젊은 어머니가 더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공부를 참 잘했어. 장학금도 받고, 좋은 회사에도 들어갔지.”
그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할머니의 허리는 조금 펴졌습니다.
그러다가도 마지막에는 늘 같은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런데 너무 바빠. 괜히 전화하면 방해될까 봐 나도 안 해.”
아들이 연락하지 않는 것이 서운하면서도, 행여 남이 아들을 흉볼까 먼저 변명해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봅니다.
“지난번에는 언제 통화하셨어요?”
“글쎄… 한 열흘 됐나?”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씀하셨지만 식탁 위 달력에는 열흘 전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날이 아들에게 전화가 온 날이었습니다.
나이 들면 전화 한 통도 조심스러워집니다
젊을 때 할머니는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아들을 키우셨다고 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남의 옷을 다리고, 영어가 서툴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살았습니다. 아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없는 돈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분이 이제는 병원 예약 하나 때문에 몇 날을 고민합니다.
영어로 걸려 온 음성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해도 아들에게 쉽게 전화하지 못합니다.
“애가 회의 중이면 어떡해.”
“손주들 데리고 바쁠 텐데.”
평생 자식이 부르면 어디든 달려갔던 부모가 늙어서는 자식에게 전화 한 번 거는 일조차 미안해합니다.
저는 간호사이니 혈압과 맥박을 확인하고 약이 제대로 정리돼 있는지 살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할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혈압약보다 전화벨 소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 잘 지내지?”
방문을 마치려는데 갑자기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화면을 보니 저장된 이름 대신 영어로 된 회사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
“광고 전화 같아요.”
제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할머니가 얼른 말씀하셨습니다.
“잠깐만. 혹시 우리 아들 회사에서 한 전화인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손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보험 가입을 권하는 광고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끊자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할머니는 괜찮다는 듯 웃으셨습니다.
“오늘은 안 오려나 보네.”
바로 그때 전화기가 다시 울렸습니다.
이번에는 화면에 SON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습니다.
“어머, 우리 아들이야.”
할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아프다던 무릎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응, 엄마야. 나는 잘 있지. 아픈 데도 없고 밥도 잘 먹어.”
방금 전까지 어지럽고 입맛이 없다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어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엄마, 잘 지내지?”
그 짧은 한마디에 할머니는 아이처럼 웃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간호 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향했습니다. 모자 사이에는 이미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가까이 사는 자식이 효도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병원에 함께 가주고, 장을 봐주고, 전구 하나라도 갈아줄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만난 가족들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갑니다.
부모는 캘리포니아에, 아들은 뉴욕에, 딸은 텍사스에 삽니다. 마음은 하루면 닿을 거리에 있지만 몸은 비행기를 타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랑까지 멀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식에게는 지켜야 할 직장과 가정이 있고, 부모에게도 자식의 삶을 존중하면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노년의 독립은 자식을 밀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건강과 생활을 스스로 돌보며 자녀가 걱정만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해주는, 부모의 마지막 배려인지도 모릅니다.
멀리 있어도 마음이 닿으면 가깝습니다
아파트 문을 닫고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안에서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정말 괜찮아. 너나 밥 잘 챙겨 먹어.”
아마 세상의 많은 부모가 같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몸이 아파도 괜찮다고 하고, 보고 싶어도 바쁘면 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혹시 자식인가 싶어 가슴부터 두근거립니다.
자식은 부모의 병을 모두 고쳐줄 수도 없고, 부모의 외로움을 전부 대신 짊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에도 저 너머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을 버틸 때가 있습니다.
울타리는 늘 집 가까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가 쓰러질까 걱정해 주는 사람, 가끔이라도 “엄마, 잘 지내지?” 하고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 역시 하나의 울타리였습니다.
한집에 살아도 마음이 멀면 천 리이고, 바다 건너 살아도 마음이 닿으면 바로 곁입니다.
그날 할머니에게 필요했던 것은 거창한 효도도, 값비싼 선물도 아니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아들의 한마디였습니다.
“엄마, 잘 지내지?”
그 한마디가 조용하던 집에 불을 켜고, 늙은 어머니의 하루를 따뜻하게 밝혀주었습니다.
간호사 제니할매의 한마디
자식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노년의 마음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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