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 당뇨박사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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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박사의 착각
40년 당뇨 경력도 최신 혈당센서 앞에서는 다시 학생이 됩니다
“제니 간호사! 아무래도 이 센서를 잘못 붙인 것 같아요!”
엊그제 방문했던 김 할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아니, 방금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데 휴대전화에는 저혈당이라고 뜨고 알람은 왜 그렇게 크게 우는지…. 레스토랑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봤어요!”
말씀하시는 목소리에 억울함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지금 어지럽거나 식은땀 나세요?”
“그런 건 모르겠고, 이 기계가 영 마음에 안 들어!”
일단 안전을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안내한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벌써 웃음이 조금 났습니다.
왜냐하면 이분은 자칭,
‘당뇨박사’
였기 때문입니다.
40년 경력의 당뇨박사
김 할아버지는 당뇨와 함께 살아온 세월만 40년이 넘었습니다.
당뇨에 관해서라면 웬만한 사람보다 아는 것이 많았습니다.
혈당도 꼬박꼬박 확인하고,
약도 정확하게 챙기고,
인슐린 투여 시간도 거의 시계처럼 지켰습니다.
부인이 차려주는 식사도 일정했습니다.
밥의 양도 비슷했고 반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기검진 날짜도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고 절대 빼먹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언가 설명하려고 하면 가끔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네, 박사님. 오늘도 복습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박사 학위도 봐주지 않았습니다.
눈이 침침해지고 손끝이 떨리기 시작하면서 매번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확인하는 일이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그래서 주치의는 팔에 붙이는 연속혈당측정기, CGM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센서가 혈당의 흐름을 계속 보여주니 편리한 기계였습니다.
문제는 김 박사님이 그 신문물을 아직 완전히 믿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캔디 한 봉지를 들고 출동했습니다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 약국에 잠깐 들렀습니다.
혹시 몰라 저혈당에 사용할 수 있는 빠르게 흡수되는 당분도 챙길 겸 해서였습니다.
그 약국에는 볼 때마다 신기한 직원이 한 명 있습니다.
Pharmacy Technician인데 단골손님들의 정보를 어찌나 잘 기억하는지 모릅니다.
손님이 이름을 말하면 바로 생년월일을 확인합니다.
“생일이…”
하기도 전에,
“April 17, 1962?”
저는 볼 때마다 속으로 감탄합니다.
‘저 머릿속에는 약국 컴퓨터가 한 대 들어 있나?’
요즘 약국 시스템은 참 편리해졌습니다.
처방약 리필 알림도 오고, 준비된 약을 찾아갈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점점 똑똑해지는데,
우리 김 할아버지는 팔에 붙은 조그만 센서 하나와 아직 기싸움 중이었습니다.
“내가 꽃등심을 세 인분이나 먹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가 팔부터 내밀었습니다.
“자, 봐요. 여기 잘못 붙인 거 아니에요?”
센서는 멀쩡해 보였습니다.
저는 먼저 현재 수치와 증상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실제 혈당과 센서 수치가 맞는지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CGM은 참 편리한 기기지만 혈액 속 포도당을 직접 측정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어서, 수치가 몸의 느낌과 맞지 않을 때는 확인이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진짜 억울함은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 모처럼 아들이 왔어요.”
“그래요?”
“꽃등심을 사줬단 말이야.”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얼마나 드셨어요?”
“아주 제대로 먹었지.”
“어느 정도요?”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하더니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혼자 삼 인분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밥은요?”
침묵.
“반찬은요?”
또 침묵.
그제야 할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기가 맛있어서… 거의 고기만 먹었지.”
박사님의 계산에서 빠진 한 가지
이제 조금씩 이야기가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평소 먹던 식사량과 생활패턴에 맞춰 당뇨를 관리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평소 식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먹었습니다.
인슐린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식사 내용과 양, 인슐린 투여, 활동량 등이 서로 맞물려 움직입니다.
특히 평소 먹을 것으로 예상했던 탄수화물을 충분히 먹지 않았는데 인슐린은 평소대로 사용했다면 저혈당 위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단순히
“고기를 많이 먹었다.”
가 아니었습니다.
평소와 달라진 식사와 인슐린의 균형을 함께 보아야 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에게 설명했습니다.
“박사님, 센서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할아버지가 센서를 째려봤습니다.
“그럼 내가 틀렸다는 거요?”
“그럴 수도 있고, 센서 수치가 실제 혈당과 조금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증상과 수치를 같이 봐야죠.”
할아버지가 말이 없어졌습니다.
40년 당뇨박사의 자존심과 최신 센서가 드디어 정면으로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이 조그만 게 나를 가르치려고 하네”
잠시 뒤 센서에서 다시 알람이 울렸습니다.
삐빅.
할아버지가 팔을 내려다봤습니다.
“거봐. 또 뭐라 그러잖아.”
저는 웃었습니다.
“잔소리꾼 하나 새로 들이셨네요.”
할아버지도 결국 웃었습니다.
“마누라도 잔소리하는데 이제 기계까지 잔소리하네.”
옆에서 듣던 부인이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 했습니다.
“나는 40년 해도 안 듣더니 기계 말은 좀 들어봐요.”
그날 집 안에서 제일 크게 웃은 사람은 저였습니다.
김 할아버지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내가 별걸 다 배우네.”
그러더니 팔의 센서를 톡톡 두드렸습니다.
“이 조그만 게 나를 가르치려고 하네.”
혈당은 경력증을 보지 않습니다
당뇨를 오래 앓았다고 해서 자신의 몸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잘 관리해온 분들은 작은 변화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몸은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고,
식사도 달라지고,
약도 달라지고,
새로운 의료기기도 계속 등장합니다.
예전에 통하던 방식이 오늘도 똑같이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40년 경력의 김 할아버지도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센서의 화살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람이 울리면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수치와 몸의 느낌이 맞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가 설명을 마치자 할아버지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딱 한마디 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해.”
몇 초 뒤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제니… 꽃등심은 먹어도 되는 거지?”
저는 웃었습니다.
“꽃등심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렇지?”
얼굴이 금세 밝아졌습니다.
“다만 다음에는 박사님 마음대로 실험하지 마시고, 평소 식사와 인슐린 계획을 생각하면서 드세요.”
김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습니다.
“알았어요. 당뇨박사도 재교육 좀 받아야겠네.”
그날 박사님에게 생긴 새 조교
방문을 마치고 가방을 챙겼습니다.
현관을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귀찮다며 내려놓았을 텐데,
이번에는 센서 그래프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옆에서 말했습니다.
“이제 그거 좀 믿어요.”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믿는 건 아니고… 연구하는 거야.”
역시 당뇨박사였습니다.
저는 웃으며 문을 닫았습니다.
40년 동안 당뇨와 싸우며 살아온 사람에게 최신 기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시끄럽고,
귀찮고,
괜히 자신보다 잘난 척하는 것 같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김 할아버지에게는 새로운 조교가 하나 생겼습니다.
팔에 붙은 조그만 센서였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조교가 앞으로도 가끔은 박사님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박사님, 오늘도 수업 있습니다.”
※ 이 글은 방문간호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건강 에세이이며 개인별 당뇨 치료법을 제시하는 글이 아닙니다. CGM에서 저혈당 경고가 나타나거나 증상이 수치와 맞지 않는 경우에는 사용 중인 기기의 지침과 담당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확인하고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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