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내가 암이래' 그 순간, 위로보다 중요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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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암이래 — 그 순간, 위로보다 중요한 한마디
“제니 씨… 나 암이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습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간호사로 오래 살면서 여러 번 들었던 말인데도 ‘암’이라는 두 글자는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을 무겁게 만듭니다.
저도 잠시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언제 알았어?”
“오늘.”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마 그 짧은 침묵 사이에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 생각이 오갔을 겁니다.
왜 나일까.
치료는 어떻게 하지.
얼마나 아플까.
가족에게는 뭐라고 말하지.
그리고 어쩌면 가장 무서운 생각까지도.
그런데 저는 간호사이면서도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요즘 암은 잘 고친대”라는 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큰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희망부터 찾아주려고 합니다.
“요즘 의학이 얼마나 좋은데.”
“아는 사람도 암이었는데 지금 멀쩡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모두 좋은 마음에서 하는 말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그런 말을 많이 했습니다.
환자가 울면 얼른 눈물을 멈추게 해주고 싶었고, 두려워하면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간호사니까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막 암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희망부터는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은 아직 희망을 생각할 준비조차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저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억울할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너무 빨리
“괜찮을 거야.”
라고 말하면 오히려 자기 두려움을 숨겨야 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많이 무섭지?”
그날 저는 한참 있다가 말했습니다.
“많이 놀랐겠다.”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무섭지?”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울었습니다.
저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그냥 그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그 사람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제니 씨, 나 사실 너무 무서워.”
그제야 저는 알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했던 것은
“안 무서워도 돼.”
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무서워도 괜찮아.”
그 말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간호사도 답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간호사라고 해서 모든 상황에 맞는 위로의 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 일할수록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됩니다.
같은 암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치료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환자의 두려움은 검사 결과 몇 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치료가 두렵고,
어떤 사람은 통증보다 가족 걱정을 먼저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보다 남겨질 배우자를 걱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누군가 큰 병을 이야기하면 해결책부터 꺼내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먼저 듣습니다.
“지금 제일 걱정되는 게 뭐예요?”
그 질문 하나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손을 잡는 데는 의학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병원이나 방문간호 현장에서 환자가 울 때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휴지부터 찾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힘내세요.”
“잘될 거예요.”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조금 다릅니다.
울면 조금 울게 둡니다.
말하고 싶으면 듣고,
말하기 싫으면 같이 조용히 있습니다.
어떤 슬픔은 말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손을 잡아주는 데는 의학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옆에 앉아주는 데도 간호사 면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전화해서
“오늘은 좀 어때?”
하고 묻는 데도 특별한 기술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런 작은 것을 오래 기억합니다.
며칠 뒤 다시 전화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제가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떻게 지내?”
목소리가 처음보다는 조금 차분해져 있었습니다.
검사를 더 받아야 하고, 의사를 만나 치료 계획도 의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제니 씨.”
“응.”
“그날 고마웠어.”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제가 해준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쳐준 것도 아니고,
좋은 의사를 찾아준 것도 아니고,
대단한 말을 해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냥 들어줬잖아.”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40년 넘게 간호사로 살면서 저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주사를 놓고,
상처를 치료하고,
약을 확인하고,
좋은 방법을 알려주고.
그런데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가장 필요한 돌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저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는 것.
무섭다는 말을 무섭지 않다고 덮어버리지 않는 것.
울고 있는 사람에게 얼른 울음을 그치라고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며칠 뒤에도 그 사람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 안부를 묻는 것.
“내가 옆에 있을게.”
누군가 어느 날 여러분에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 암이래.”
그 순간 좋은 말을 찾느라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병을 다른 사람의 병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씩씩해지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저 역시 이제는
“다 잘될 거야.”
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대신 조금 더 솔직한 말을 합니다.
“많이 놀랐겠다.”
“무섭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마디를 더합니다.
“내가 옆에 있을게.”
병을 대신 앓아줄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을 대신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혼자 걷게 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오래 간호사로 살고서야 저는 그 차이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위로란,
상대의 슬픔을 없애주는 일이 아니라
그 슬픔 때문에 혼자가 되지 않게 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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