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제니할매 이야기 '아프냐?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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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40년 넘게 환자를 돌본 간호사가 이제야 알게 된 말
“어디가 아프세요?”
간호사로 40년 넘게 살면서 아마 제가 가장 많이 한 말일 겁니다.
병원에서도 물었습니다.
요양시설에서도 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방문간호사가 되어 낯선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갈 때도 어김없이 물었습니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세요?”
처음에는 정말 아픈 곳을 찾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허리가 아픈지, 무릎이 아픈지.
밤새 숨이 차지는 않았는지.
약은 제대로 드셨는지.
혈압은 괜찮은지.
간호사는 환자의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찾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수십 년 동안 남의 아픈 곳만 들여다보다가 어느 날부터 제 몸에서도 하나둘 대답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제니야, 나도 아프다.”
환자보다 먼저 내 무릎이 대답했다
젊었을 때는 하루 종일 병동을 뛰어다녀도 다음 날이면 멀쩡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고 밤을 새워도 또 출근했습니다.
그때는 건강이 재산이라는 말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건강은 원래 있는 것인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세월은 참 정직합니다.
요즘은 환자 집 계단을 올라가다가 저도 모르게 난간을 잡습니다.
오래 운전하고 차에서 내리면 허리를 한번 쭉 펴야 하고, 하루 방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무릎이 먼저 말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럴 때면 웃음이 납니다.
평생 환자들에게
“무리하시면 안 돼요.”
“쉬엄쉬엄 하세요.”
그렇게 잔소리하던 간호사가 이제 자기 몸에게 똑같은 잔소리를 듣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어르신이
“간호사 양반, 늙으니까 안 아픈 데가 없어.”
하고 말씀하시면 예전처럼 쉽게
“그러게 운동을 좀 하셔야죠.”
라는 말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저도 모르게 제 무릎을 한번 쓰다듬게 됩니다.
그리고 속으로 말합니다.
‘그러게요. 저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혈압계보다 먼저 의자를 꺼낸 날
어느 날 혼자 사시는 어르신 댁을 방문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가방을 내려놓고 혈압계부터 꺼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어르신이 저를 보자마자 말씀하셨습니다.
“간호사, 오늘은 누가 내 이야기 좀 들어줬으면 했어요.”
그 말에 손이 멈췄습니다.
저는 혈압계를 다시 내려놓고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겼습니다.
“그래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처음에는 별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멀리 사는 자식 이야기.
먼저 세상을 떠난 배우자 이야기.
젊었을 때 일하던 직장 이야기.
요즘은 저녁밥을 혼자 먹는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분에게는 그날 제가 간호사이기 전에 찾아온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한참 뒤에야 혈압을 쟀습니다.
혈압이 기적처럼 좋아진 것도 아니고, 아프던 관절이 나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을 나설 때 어르신 얼굴은 처음 문을 열어주셨을 때와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간호사, 오늘 고마워요.”
제가 한 일이라고는 대부분 듣고 있었던 것뿐인데 말입니다.
현관문을 닫고 나오면서 한동안 그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아픈 사람에게 너무 빨리 약을 찾고, 너무 빨리 답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그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보다 왜 그렇게 힘든지 먼저 들어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나이가 들고서야 보이는 것들
젊었을 때 저는 좋은 간호사가 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질병을 알고, 약을 알고, 응급상황을 빨리 판단하고, 환자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해주는 것.
물론 지금도 그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가 더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검사 결과에 나오지 않는 아픔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
먼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예전 같지 않은 자기 몸을 바라보는 서러움.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 것들은 혈압계에도, 혈당계에도 숫자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그 마음을 알아갑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환자 앞에서 말이 줄었습니다.
대신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손을 한 번 더 잡고, 이야기를 조금 더 듣게 됩니다.
제니야, 너는 잘 늙어가고 있니?
환자 집을 나와 차에 앉으면 가끔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제니야, 너는 잘 늙어가고 있니?”
대답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무릎도 아프고, 기억도 예전 같지 않고, 하루 일을 마치면 소파부터 찾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잘 늙는다는 것이 젊었을 때의 몸을 끝까지 붙잡고 사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예전보다 천천히 걷게 되었다면 천천히 걷는 세상도 한번 바라보고,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왔다면 때로는 다른 사람의 손도 잡아보고,
몸이 아픈 날에는 괜찮은 척하지 않고 “오늘은 좀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도 잘 늙어가는 모습인지 모르겠습니다.
40년 넘게 저는 환자를 돌보러 다녔습니다.
아픈 곳을 묻고, 혈압을 재고, 약을 확인하고, 상처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아픔은 언제나 혈압계나 검사 결과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날은 무릎보다 마음이 더 아프고,
어떤 날은 약보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환자가
“간호사님, 늙으니까 안 아픈 데가 없어요.”
하고 웃으면 저도 따라 웃습니다.
예전 같으면 무슨 말을 해드려야 할지부터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잠시 그분 곁에 앉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나 역시 조금씩 늙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저는 수많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어쩌면 그 질문의 뜻을 제대로 알기까지 참 오래 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그 말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건넵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당신의 아픔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프다는 그 마음만큼은 외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오늘도 저는 누군가의 집을 찾아갑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면 아마 또 같은 질문을 하겠지요.
“오늘은 좀 어떠세요?”
그러면 어느 할머니는 무릎을 두드리며 말씀하실 겁니다.
“뭐, 늙으면 다 그렇지.”
저도 웃으며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우리 같이 천천히 늙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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